윤소진의 [뿔]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동명 싱글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작품, 말하지면 뮤직비디오다. (여기서 ‘아마도’는 밴드 이름에 포함되는 단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뿔”이라는 곡은 작은 서사를 가진 노래로, 커다란 뿔을 가진 소녀와 그 뿔을 빼앗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순한 악기구성에 조금은 난해하면서도 흥미로운 이 곡은 아마도 애니메이션 감독에게는 어떤 동화책처럼 다가왔던 모양이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동화들이 사실 지독한 메타포와 불편한 이미지들을 차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이 작품이 취한 – 또는 동화책이 가진 낯선 이미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건 감독이 이 노래를 ‘진짜’ 동화책 속에 위치시키려 한 시도들이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두 종류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동화책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은 동화책의 각각의 페이지 안에 살고 있으며, 동화책의 주인공들이 하는 행위에 당연히 개입하고, 이야기에 역할을 가진다. 두 번째는 동화책의 외부에서 책을 읽는 – 손가락이 다섯 개인 – 자이다. 이 인물은 이야기에 시간을 부여하는 책 넘기는 자이자, 작품을 소개하는 독자-이야기꾼이다. 보통의 디즈니 계열의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봐 왔던 방식이다. 누군가 오래되고 두꺼운 이야기 책의 책장을 넘기면, 외부의 인물은 더 이상 개입하지 못하고, 작품의 마지막에야 이르러 두꺼운 외피를 닫고 있는 역할, 미상의 인물, 텍스트와 외부 사이, 미지의 공간에 위치한 – 파라텍스트(para-text)다. 하지만 이 뮤직비디오에서는 입장이 다르다. 그 손은 작품 내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이야기의 끝도 수정하는 독자-이야기꾼-텍스트-‘작가’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디즈니 계열의 작품들이 가지는 그런, 페어리 테일하고, 입체적인 공간에 위치한 그럴싸한 이미지들을 상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여기엔 평면의 동화책 공간에 어울리는 아트웍 만이 득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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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의 볼거리는 바로 그 독특한 아트웍에 있다. 그 흔한 소실점이나, 원근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평선이나 벽이 없기에 공간은 무작위적으로 구성된 가구나 박스들에 의해서 규정”된다. 무엇보다 인물들은 극단적으로 단순화되고, 평면적이다. 동화책이라는 평면적 공간에 더없이 어울리는 인물들이다. 여기엔 원근법과 같은 일루전이 없고, 그야말로 자유로운 아이디어와 공간, 그 안에 캐릭터들의 포즈가 있다. 바로 UPA(United Productions of America)의 스타일이다. [제럴드 맥 보잉 보잉](1950)으로 대표되는 UPA의 작품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척점에서 활동하던 이들로써,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 미술과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당시 디즈니와는 다른 방식의 상상력과 미학을 이룩한 집단이었다. 이들의 작품에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모딜 리아니의 모습이 발견되는 건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윤소진의 [뿔]도 마찬가지다. [뿔]은 단순하게 UPA의 스타일만 가져온 것이 아니다. 작가는 분명, 책이라는 평면 위에 안착되는 공간과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흔한 그림이 아닌 낯선 이미지들이 창궐하는 동화책의 공간을 준비했다면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내부의 공간들은 마음대로 펼쳐지고, 가로질러지고, 무작위로 결합하는 바로 그런 공간. 그 속에서 작가는 동화책을 넘기는 손으로 이야기에 개입하고, 마음으로도 개입한다. 규정을 무너뜨리고 자유를 넘나들었던 UPA처럼 말이다.
작품의 마지막, 소녀의 뿔을 가져간 그녀는 다시 소녀에게 뿔을 돌려주지만, 소녀는 그녀를 용서하고 뿔을 버린다. 그리고는 책의 마지막 장에 소녀와 그녀의 그림이 투명 테이프로 고정되어 끝을 낸다(저 테이프는 작품에서 한번 더 등장한다). 분명 저 테이프는 개입한 작가의 손이다. 원작 노래에는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마도’ 뮤직비디오 이상일지 모른다.
한태식(애니메이션 프로듀서, 평론가)
[작품 정보]
- 작품명: 뿔
- 감독: 윤소진
- 노래: 아마도이자람밴드
- 시놉시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뿔 달린 소녀. 그녀는 소녀를 질투한다. 어느 날 소녀의 뿔을 빼앗은 그녀는 뿔을 쓰고 거리로 나간다.
- 기획의도: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뿔]을 한 권의 그림책을 읽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독특한 감성의 <뿔>과 어울리는 아트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작품 링크: https://youtu.be/AXsj6GzG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