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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게시판
  등록일 : 2021-12-28 | 조회 : 936 | 추천 : 0 [전체 : 27 건] [현재 1 / 1 쪽]
이름
KIAFA
제목
[시속] 리뷰


애니메이션에서 재현(representation)과 재연(re-enactment)의 문제는 ‘세계-작가-작품’이라는 씨줄과 날줄 사이에서 부드럽게 빠져 나가지 못하고, 채에 덩그러니 남아버린 현실의 구멍과 같다. 전통적으로 애니메이션은 비가시적인 것을 재현하고, 애니메이션 작가의 행위는 세계를 별도로 재구성(perform)해왔기 때문이다. 대신 실사영화가 현실 세계를 기계적 무의식으로 “찍어내는 기호(index)”임에 비해, 애니메이션은 현실세계를 1차적으로 “표현한다(icon)”점을 상정해 본다면 이들 각 매체가 가지는 이미지의 사유 방식과 그 지평선의 범위는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오이슬의 [시속] 3연작은 그런 의미에서 애니메이션이 세계를 대하는 또 ‘다른’ 범주를 보여준다.

[시속]은 다른 예술 장르인 시(詩)를 소재로 삼고, 이를 낭독하는 소리와 점멸하는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시의 문자 자막을 같은 프레임 안에 융합했다. 말하자면 시의 텍스트에서 읽혀지는 문자, 시각이미지, 청각이미지를 공감각화 한 셈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이미지의 사유는 이미 시인에 의해서 1차적으로 만들어진 감각들인데, [시속]은 대담하게 시인의 감각이 작동하던 시점을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재연’한다.

첫 번째 작품인 [다이버]는 시의 화자가 언급한 것처럼 깊은 물속과 수면의 안팎을 오가는 행위를 “오래 길러온 몸 속 바다를 뒤집어 서로에게 내어주는 일이었”으며, “안팎이 서로를 침범”함를 각오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시속]의 작가는 그러한 공간을 “촉지적 감각, 즉 언어가 사라진 “오직 키스로만 인간은 말을 잊는” 구체적인 장소로 치환하는데. 그것은 바로 색면의 마띠에르(Matiere)가 굽이치는 평면이었다.

두 번째인 [질의응답]은 마치 첫 번째 [다이버]의 질의응답처럼 보인다. 시의 화자는 상실로 인해 언어가 사라진 침묵이 “심해의 끝까지 가닿은 문 같”은 무게감으로 치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연에 뛰어들고 흘러 들어, 두드리고 “생각”하고자 하였다면, [시속]의 작가는 이 닫힌 문을 오랜 기억 속의 인물과의 물질적-촉각적 교환 내지는 전달 – 오렌지 또는 귤 - 로 재연했다.

세 번째인 [열과](여름, 장마철에 사과와 배, 복숭아 등의 과일 표피가 갈라지는 현상)에서의 시인 화자는 한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과 장마로 떨어지고, 더럽혀진 마음의 과수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새로운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흘러간” 또는 “지나간 시간”을 - 문을 열어두는 “문지기”가 되기 위한 다짐으로 치환하였다. 이에 반해 [시속]의 작가는 [다이버], [질의응답]의 그것과는 달리 화자의 위치를 무채색의 현실적 공간으로 재연하고, 이를 조금 다른 서정-서사로 덧 입혔다.



이같이 [시속]은 시인 화자의 심상, 즉 이미지를 ‘재연’하였다. 이 작품이 일종의 ‘숭고’까지 느껴지는 것은, 오롯이 시라는 무게감에서 비롯된 작품 때문이라는 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오랜 기억의 시화전(詩畫展)이나, 디카시(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배경위로 덮인 시)의 감흥도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는 각 시속의 화자와 [시속]의 화자가 나눈 대화가 있다. 그 대화의 끝에는 깊은 심연 속에서 질의응답을 주고받은 이후에, 드디어 열려진 문과 그 틈으로 성숙해진 문지기가 보이고, 들리고, 읽힌다. [시속] 3연작이라 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대화에 사용된 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과, 애니메이터의 퍼포먼스(performances)라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한 때 많은 예술의 장르들은 ‘문학적’인 것으로부터 탈출하여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것은 재현의 법칙이 지배하는 서사와 같은 것이었다. 이때 회화는 재현을 벗어나기 위해 ‘점-선-면과 평면’이라는 차이를 획득하였고, 음악은 ‘무조성주의’를 시작했으며, 다양한 시각 예술들은 아방가르드를 표상하였다. 당연히 아방가르드의 세례를 받은 애니메이션도 그려진 이미지가 가진 특성 때문에 “문학적인 것 – 서사와 재현의 법칙”에서 이미 벗어나 있었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은 서사보다는 서정에 가까운 것으로, 자유로운 병치와 치환이 기본적인 순수성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시속]을 언급함에 있어서, 이 작품을 시적(詩的)이라기보다는 애니메이션적이라 보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한태식(애니메이션 프로듀서, 평론가)


[작품 정보]

- 작품명: 시속

- 감독: 오이슬

- 시놉시스:

1편 다이버 | 시, 낭독 이혜미

이혜미 시인의 ‘다이버’를 원작으로 만든 웹 애니메이션입니다. 

모험은 두려움 이기도, 설렘 이기도 합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다이버, 그가 향하는 곳은 어떤 세상일지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2편 질의응답 | 시, 낭독 안미옥

안미옥 시인의 ‘질의응답’을 원작으로 만든 웹 애니메이션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를 읽으며 받은 위로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3편 열과 | 시, 낭독 안희연

안희연 시인의 ‘열과’를 원작으로 만든 웹 애니메이션입니다. 

삶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화자가 말하는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을 생각하며,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여름의 인연을 그려보았습니다.


- 기획의도:

애니메이션은 현실을 시적인 이미지로 연결하는 매체이기도 합니다. 시(詩)속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통해, 현대 시와 애니메이션이 만나는 새로운 감상의 경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 작품 링크: 

1화 https://youtu.be/qkZUDArRuNY

2화 https://youtu.be/LTml-Q-x8f4

3화 https://youtu.be/WYKZxLpbaIY



KIAFA님이 2021-12-28 오전 9:00:00 에 작성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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