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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게시판
  등록일 : 2021-12-28 | 조회 : 928 | 추천 : 0 [전체 : 27 건] [현재 1 / 1 쪽]
이름
KIAFA
제목
[Palm Oil Fair] 리뷰


“팜 오일을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자연 훼손이 자행되고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조금 더 친절을 베풀자면, 팜 오일은 기름야자나무 열매로 만들고, 전 세계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의 열대림이 엄청나게 파괴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미디어이다. 물론 예술이기도 하고, 상품이기도 하고, 문화이기도 하고, 때론 형식으로 때론 장르로 다뤄지기도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로서의 애니메이션은 그 역사가 아주 깊다. 젊은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영역에 갓 뛰어들었을 때 만들었던 작품들은 ‘Laugh-o-gram’이라는 광고 애니메이션이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꽤나 잔망스런 작업물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부터 10년 후 (미키 마우스와 사운드 애니메이션의 개척), 20년 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성취를 이끌어낼 중요한 출발점이다. 초기 실험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꼽을 수 있는 렌 라이(Len Lye)의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필름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낸 작품인 [A Colour Box] (1935)는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추상 이미지를 보여주는 실험 영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포 서비스를 홍보하는 광고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역사의 기원으로까지도 올라가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A Matchbox Appeal] (1899)은 당시 보어 전쟁에 참전 중인 영국군을 위해 위문품으로 ‘성냥’을 모아서 보내자는 캠페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은 태생부터 확실한 메시지 전달력을 인정받았다. 메시지의 영역을 광고와 캠페인을 넘어서 프로파겐다와 아젠더, 지배 이데올로기 (그리고 이에 맞서는 저항 이데올로기)까지 확장한다면, 이미 책 한권 정도는 가뿐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한국의 독립 애니메이션 또한 그 출발점을 민중 미술 운동과 영화 운동에 두고 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지닌 강력한 메시지 전달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대중에게 친근함으로 다가가기 때문일까?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새롭고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때문일까? 친근함, 친숙함, 신박함, 신선함 등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사 영상보다 제작비가 적게 들거나, 제작 규모와 기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 퀄리티는 희생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효과적인 선전 매체’라는 등식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성공 사례들만 떠올리지만, 실패 사례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진부함, 유치함, 허술함 등등의 부정적인 결과물을 우리는 대개 ‘건너뛰기(skip’)과 ‘삭제하기(delete)’를 통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뿐이다. 가장 뻔한 방식으로 (이를 테면 아주 뻔한 주류 상업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아주 흔한 메시지 (예컨대, “이 제품이 최고예요”라던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단연코 이곳입니다”라는 식)를 전달하는 애니메이션 광고는 부작용이나 역작용, 그리고 무쓸모를 낳을 뿐이다.

애니메이션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무언가 말을 걸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성과 관습을 뛰어 넘어야 한다. 가장 정석은 애니메이션 스스로 새로운 자기 규정을 하는 방식이다. 물론 어렵다. 그런데 이미 그 힌트는 성공 사례의 역사, 즉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애니메이션 내부에서 외부로 자신을 확장시키는 것보다는, 애니메이션 외부의 것이 애니메이션의 경계 지점을 스치면서 지나갈 때 불꽃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성냥개비에 불을 붙일 때처럼, 날카로운 마찰과 함께 불꽃이 튀듯이 말이다.



[Palm Oil Fair]가 바로 그 점(마찰 지점이자 발화점)을 증명하는 좋은 예이다. 팜 오일과 관련한 이슈가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상관없다. 광고, 선전, 메시지 전달 매체로서 애니메이션의 역할은 우리의 시선을 일정한 시간 동안 붙잡아 두는 것에 있다. 단지 메시지 표명을 위해서라면 표어를 써붙이거나 구호를 외치면 된다 (이 글의 첫 문장처럼). 그것을 읽거나 들으려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문제다. 고발 영상을 찍어 상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고, 그러한 고발이 마치 계몽의 권위로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위력은 여기서 발휘된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새롭게’, 불편한 진실을 ‘친근하게’, 뻔한 메시지를 ‘신박하게’ 제시하는 경우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주문만 외운다고 실현되는 마법은 아니다. 메시지를 신선하게 전달하려면, 애니메이션 자체도 신선하게 접근해야 한다. [Palm Oil Fair]은 메시지 전달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새롭게 보여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이를 새로운 접근법으로 드러낸다. 어쩌면 이러한 새로움 속에서 메시지 전달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나는 이 작품을 굳이 광고 애니메이션의 영역에 가둬 두고 싶지 않다. 우리는 아주 멋진 애니메이션 감독을 찾아내었다. 기다렸던 ‘창의인재’가 이렇게 우리 앞에 등장했다.

나호원(애니메이션 감독, 연구가)


[작품 정보]

- 작품명: Palm Oil Fair

- 감독: 이영범

- 협력: 환경운동연합

- 시놉시스:

팜유로 만들어진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던 사람은 떨어진 열매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우연히 낯선 면에 들어오게 되고 잡히지 않는 열매를 따라가니 세트가 무너지고 바닥에서 물건이 만들어지기 위해 파괴되는 산림과 피해 받는 동물들이 보여진다. 첫 번째 장면으로 돌아가며 사건은 반복된다.

- 기획의도:

입체로 이루어진 정육면체 세트에 보여지는 세 면을 '소비가 이루어지는 박람회장'과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장', 그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을 형상화하여 이 모든 일이 한 공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표현했다. 입체 세트를 활용하기 위해 스탑모션 기법을 사용했고, 파괴되는 자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실제 이미지를 이용한 콜라주 기법을 사용했다.

- 작품 링크: https://youtu.be/qSj-SyaKGgA

KIAFA님이 2021-12-28 오전 9:00:00 에 작성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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