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방영된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 [불멸의 시대 : 기계인간 - 사이보그와 디지털 트윈]편에서 제기된 담론이 떠오른다.
기실, 로봇이나 사이보그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개 공상과학 속 미래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부분은 미지의 영역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슈퍼컴퓨터가 인간과의 바둑 대국에서 승리하고, 딥러닝 기술에 의해 컴퓨터 속 아바타가 인간의 특성을 똑같이 흉내 내고 있는 현재의 기준에서 이제 기계인간의 꿈(?)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모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복제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가 남는데 바로 인간의 기억(MEMORY)에 대한 부분이다. 기억이 보존되지 못한 기계인간은 말 그대로 인간의 외피를 입은 기계에 불과한 것이며, 때문에 앞으로의 과학기술도 인간의 기억을 토대로 실제 본인과 똑같이 사고하는 디지털 트윈을 창조(?)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한다.
우주비행사로 발탁된 기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하던 미나가 그의 유품에서 과거 함께 만들던 로봇을 찾아 재가동 시키면서 [On Your Memory]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사랑하던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 금기를 깨거나, 혹은 초월적인 힘을 빌리는 등의 플롯은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부분이다. 연인을 잃었을 때의 상심, 그리고 뒤늦게 사라진 사랑이 남긴 흔적을 발견하였을 때의 그리움과 회한을 담음으로써 관객이 쉽게 등장인물의 상황과 동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미나가 로봇의 MEMORY 속에서 사랑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를 SF적으로 치환해 낸 부분이라 작품에 대한 흥미도를 배가시킨다. 어찌 보면 기태의 모습은 다소 혐오스러운 로봇의 외형을 띄고 있지만, 미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기태와의 소중한 추억들이 백업되어 있는 MEMORY. 이것을 매개로 서사물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시나리오 공식과 구조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짧은 러닝 타임 안에 기승전결의 구조와 고조되는 감정 곡선을 매끄럽게 잘 표현해 냈다.
모든 신에서 이야기의 주제를 잃지 않고 집중하였기 때문에 엔딩 이후의 여운 또한 훌륭하게 연출되었다. 다만, 길지 않은 러닝 타임 내에 사건을 함축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과장된 전개나 인물의 행동은 다소 세련되지 못한 선택으로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현주와 로봇이 충돌하는 지점부터의 급전개로 인물의 감정변화 과정이 생략되어 과격한 행동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관객의 감정이 등장인물의 감정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괴리감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인물의 감정선을 상징과 비유 등의 장치를 이용해 적절한 전개 속도로 묘사했더라면, 내러티브가 훨씬 더 탄탄하게 유지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죽은 남편을 디지털 빅데이터로 환생시키는 내용의 넷플릭스 SF 드라마 [블랙미러]의 돌아올게(Be Right Back) 에피소드가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On Your Memory]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연출과 작화에 있어 다소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시나리오 구조와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소재를 사용하여 관객이 쉽게 공감하고 몰입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성인을 위한 SF 장르가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국내 대중문화의 저변을 고려해 볼 때 응원해 주고 싶은 작품이고, 본작에서 체득된 감독의 시행착오와 노하우들도 모두 MEMORY에 담겨 더 나은 다음 작품으로 이식되길 기대해 본다.
송락현(애니메이션 프로듀서)